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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친구가 있는가?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4/01/08 [15:07]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예수님이 사랑하는 신자들을 부를 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물론 ‘제자’로 부른 일이 많았다. 그러나 아들, 신부(新婦) 및 친구로도 불렀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것도 개입시키지 않는 친밀한 관계로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아버지, 주인(Lord), 남편, 친구로 이해하게 했다. <명심보감>에는 ‘밥이나 술을 같이 먹을 친구는 천 명도 넘지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즉시 와서 도와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고 탄식했다. ‘씨알의 소리’로 유명한 함석헌 선생의 시는 친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만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고/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함석헌/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이러한 친구가 ‘급난지붕’(急難之朋)이니, 친구 간에는 믿음(신뢰)이 있어야 된다.

 

옛날부터 “친구 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朋友有信)고 강조해왔다. 성경에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사울의 부하이자 사위였던 다윗의 우정이 모범 사례이다.(삼상18:1-4, 19:1-7, 20:12-17, 23:17-18, 삼하1:18-27, 삼상31장, 삼하4:4) 중국사를 보면 당(唐) 대의 우정으로 관포지교(管鮑之交)가 있다.

 

두보가 빈교행(貧交行)이란 시에 “손을 젖히면 구름이 되고 손을 엎으면 비가 되네/ 분분한 경박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군은 보지 않느냐? 관포의 가난할 때의 사귐을/ 이 길을 사람들은 흙과 같이 버리는 도다”란 게 있다.

 

세태가 경박할 때에 교훈 사례로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빈부불구, 변하지 않는 우정을 강조한 것이다. 관중과 포숙아는 죽마고우로 함께 자랐다. 포숙아는 관중의 뛰어난 재능에 반해있었다. 관중은 가난하게 살다보니 곧잘 포숙아를 속였다. 그래도 포숙아는 변함없이 우정을 이어갔다. 얼마 후 포숙아는 제(齊)나라의 공자(公子)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고 관중은 공자 규(糾)를 섬기게 되어 서로 나뉘었다. 소백이 즉위하며 제환공(齊桓公)이 되자 경쟁자였던 규(糾)는 패배해서 살해되고 그를 따르던 관중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포숙은 환공에게 진언하여 관중을 중용하도록 도왔다. 이후 환공은 관중의 충성과 도움으로 천하의 패자(霸子)가 될 수 있었다. 후에 관중의 회고는 이러했다. “나는 어린시절 너무 가난하여 포숙아와 동업장사했을 때 늘 내 몫을 많이 챙겼지만 포숙아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또 포숙아를 위해 벌인 일이 오히려 그를 난처하게 만든 일이 있었을 때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시운(時運)에 따라 잘하려 했어도 잘못되는 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벼슬길에서 자주 쫓겨나는 일이 있었지만 나를 무능력자로 취급하지 않았고 내가 싸움터에 나갔다가 도망쳐 온 일에 대해서도 늙은 어머니가 계시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주었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사람이 되게 도와준 사람은 친구 포숙아다.” 포숙아는 관중을 추천한 사람이지만, 관중보다 아랫자리에서 일하며 관중을 존경했다. 관중의 유능함보다 포숙아의 너그러움이 더 빛나는 우정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백아절현(伯牙絶絃)도 우정의 사례다.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의 연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知音의 친구였다). 어느 날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이상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겠다고 줄을 끊고 말았다. 멋쟁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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